일의 본질 알기
언론사 인턴십이 가르쳐 준 것
프로그래머로서는 특이하게도 나는 사회과학을 전공하고 언론사 인턴 기자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기자를 꿈꾼 건 아니었다. 그저 어려서부터 사회에 관심이 많고 글쓰기를 좋아했다. 글을 잘 쓴다는 관대한 어른들의 칭찬을 퍽 들으며 자란 탓에 '글쓰는 일'이 좋은 경험이 될 거라 판단했다. 언론사에서 보낸 한 해동안 실제로 많은 것을 배웠다. 그 중 하나는 기자는 글쓰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의 본질
인턴 기자 시절 어떤 동기로 언론사에 지원했냐는 질문을 으레 받았다. 어느 회식 자리에서 까마득한 대선배 기자가 물었을 때, "글쓰는 게 좋아서요."라고 답한 일이 있었다. 그분은 웃으며 반쯤 농담으로, 그러나 나머지 반은 진담으로 "너 옛날에 내 후배였으면 혼났어." 하셨다. 그리고 당신이 내 또래였던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하수도가 역류해 악취가 진동하는 수해 현장을 헤집으며 취재했던 일, 사고 현장에서 사망자 정보를 입수해 유족에게 직접 사망 소식을 전하고 무너져내리는 사람을 인터뷰 해야했던 일까지. 기자가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기 전까지 어떤 일들을 얼마나 치열하게 해야하는지를 나는 간과했던 것이다. 웃으며 가볍게 나눈 대화였지만 오래도록 곱씹을 깨달음을 얻은 경험이었다.
기자 일의 본질은 정보를 발굴해 신속 적확하게 전달하는 것이고, 글쓰기는 수단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기자를 글쓰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건, 본질을 구현하는 도구로 활자 매체가 오랫동안 사용됐기 때문일 뿐이다. 그래서 종이 신문의 자리를 유튜브 영상이 꿰찬 오늘날에도 기자들은 여전히 정보를 찾아 현장을 누빈다. 수단은 진화할지라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이는 모든 분야에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그렇다면 프로그래밍의 본질은 무엇일까?
프로그래밍의 본질은 코딩이 아니다
지난 몇 년간 프로그래머로 일하면서 내가 정의한 프로그래밍의 본질은 '컴퓨터 기술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프로그래밍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건 코드지만, 기자가 글쓰는 사람이 아니듯 프로그래머는 코딩 하는 사람이 아니다. 활자 매체 시대의 기자에게 글쓰기가 그랬듯이 프로그래머가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 코딩이었을 뿐이다. 혹자는 인공지능의 발전이 프로그래머의 종말을 의미한다고 말하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컴퓨터 기술을 활용하는 방식이 코드를 직접 작성하는 것에서 인공지능이 작성하도록 지시하는 것으로 바뀌었을 뿐, 문제 해결은 여전히 프로그래머의 몫이기 때문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현실 세계에는 컴퓨터 기술로 해결할 수 있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너무나 많다. 일의 본질을 아는 한 프로그래머의 종말은 먼 일일 것이다.